(1994. 8. 13 / 가: 박춘기, 남, 1945. 나: 민영수*, 남, 1934)
가:
정선에 아라리에 다 늙어져도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에 박춘기 아라리 늙지를 말어라
나:
울타리 밑에나 신작로 문금은 메누리 권리로 났는데
동네에 이장 반장이 도로비 받으루 왔구나
가:
금선아 옥선아 니 워데 가나
하이칼래 끌려서 북만주 가지
나:
대구장가역에 포름포름해 당신이 날 가자더니
온산 초목이 아우러져도나 감감 무소식이라
가:
가리왕산1) 산중허리엔 실안개가 돌고
다 큰아기 신멋은 한중 허리에 노네
나:
산제당 까마구 까왁 짖거든 내 병든줄 알구서
우편수야 배달 오거든 민영수 죽은줄 알게
가:
오늘 갔다가 내일 오는 건 해와 달이련만
공동묘지 가신 님으는 언제나 오나
나:
앞남산천 곤드레 딱주기 나지미 맛만 같으면
한해께야2) 숭년에도 봄 살어 난다
가:
막동3) 장전리 곤드레 딱주기 무슨 죄를 지었나
다 큰아기 손길에 칼침을 맞나
나:
열에 십육에 옐예섯살에 가장을 잃어 버리고
팔모나야 지둥만 안구만 울고 있네
◆ 민영수(남, 1934) : 토박이로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약초를 채취하러 산에도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가창자의 집은 아주 오래 전에 지었다는 귀틀집으로, 싸리나무를 세워 부엌 벽을 대신하고, 돌담을 쌓아 화장실을 만든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 원본: 평창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