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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요전집_세부곡목4

북한민요전집(4) - 전문소리꾼 편(2CD)


북한의 서도소리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북한에서 녹음된 전문 소리꾼들의 민요이다. 북한은 전문 소리꾼들의 민요를 ‘전문가편’이라 하여 일반인들의 민요와 구분하여 간직해 왔다. 이들 자료에는 전통 민요뿐 아니라 일제시대와 해방 후에 만들어진 신민요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음반에 수록한 곡들은 그 중에서 전통성이 인정되는 민요만을 선곡한 것이다. 신민요는 굳이 음반을 내지 않아도 악보 등을 통해 충분히 재현이 가능하며, 그 음악사적 가치에 대해서도 좀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여 선곡에서 제외했다.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가 나서서 일제 때 나온 유성기 음반과 생존한 민요 소리꾼들을 찾아내 이들의 소리를 채보, 채록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음반에 수록된 민요들은 그 가운데서 김진명, 한경심, 장재천, 김관보, 김병국, 위상심 등 여섯 명의 전통민요 소리꾼이 전통 창법으로 노래한 곡들이다. 이들의 노래는 대체로 길이가 짧고 가창자들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지 않은 느낌이 있으나, 오래 전에 녹음된 명창들의 소리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서도소리와 비교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선곡에서 제외한 자료 가운데는 신민요 뿐아니라 젊은 민요가수들이 부른 전통민요도 포함돼 있다. 선우일선, 홍탄실, 계춘이, 신우선, 왕수복, 김순희, 김정화, 장종철 등이 부른 민요가 그것이다. 이들은 각 지역의 전통적인 민;요 창법을 따르지 않고 서양식에 가까운 창법을 구사하고 있어, 전통 창법으로 부른 노래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이들 노래를 따로 묶어 출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곡된 곡목의 대부분은 소리꾼들이 흔히 공연곡목으로 삼는 유흥요들이지만, 드물게 노동요가 들어있어 흥미롭다. 논매는소리, 터다지는소리, 만선풍장소리-봉죽타령 등이 그것인데, 남한의 전문 소리꾼들이 토속민요를 별로 부르지 않는 것에 비하면 분명 주목할 점이다. 북한의 전문 소리꾼들은 전통적인 유흥요 뿐아니라 신민요와 토속민요도 필요에 따라 기꺼이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소리꾼 중에서 김진명, 한경심, 김관보, 장재천에 관한 기록은 구할 수 있었으나, 김병국, 위상심에 관한 자료는 끝내 구할 수 없었다. 그나마 김병국은 사진이라도 한 장 있어 다행이지만 위상심은 그렇지도 못하다. 북한에는 이들에 관한 자료가 있을 것이나, 이 음반이 나올 때까지는 자료를 얻지 못했다. 추후 보완을 기약한다.

수록곡 목록

CD-1

1. 논매는소리 / 제창 / 2‘35
2. 터다지는소리 / 장재천 / 1‘08
3. 만선풍장소리-봉죽타령 / 김병국 / 1‘33
4. 룡강기나리/룡강타령(1) / 한경심 / 6‘09
5. 룡강기나리/룡강타령(2) / 김병국 / 3‘51
6. 기나리 / 위상심 / 2‘19
7. 수심가(1) / 장재천 / 1‘49
8. 수심가(2) / 한경심 / 2‘21
9. 엮음수심가 / 한경심 / 4‘40
10. 수심가(3) / 김관보 / 3‘01
11. 방아타령 / 장재천 / 3‘28
12. 사설방아타령 / 김병국 / 1‘36
13. 구영변가(1) / 김진명 / 1‘48
14. 구영변가(2) / 장재천 / 1‘44
15. 구영변가(3) / 한경심 / 4‘28
16. 구영변가(4) / 김관보 / 3‘34
17. 배따라기 / 김진명 / 4‘54
18. 잦은배따라기 / 김관보 / 1‘58
19. 장끼타령 / 장재천 / 4‘45
20. 변강쇠타령 / 김병국 / 6‘28

CD-2

1. 난봉가(1) / 한경심 / 4‘31
2. 난봉가(2) / 장재천 / 2‘35
3. 잦은난봉가 / 김병국 / 1‘43
4. 사설난봉가 / 장재천 / 2‘09
5. 사설난봉가/개타령 / 제창 / 4‘40
6. 개타령 / 장재천 / 1‘19
7. 긴도라지(1) / 한경심 / 3‘27
8. 긴도라지(2) / 김관보 / 1‘11
9. 배꽃타령(1) / 장재천 / 1‘01
10. 배꽃타령(2) / 김관보 / 1‘19
11. 물레타령 / 김관보 / 1‘01
12. 산염불(1) / 장재천 / 2‘33
13. 산염불(2) / 김관보 / 2‘16
14. 느리개타령 / 장재천 / 0‘47
15. 풍구타령 / 김진명 / 1‘22
16. 끔대타령 / 장재천 / 0‘50
17. 몽금포타령 / 김관보 / 1‘11
18. 양산도 / 장재천 / 1‘46
19. 개성난봉가(1) / 장재천 / 0‘59
20. 개성난봉가(2) / 한경심 / 2‘30
21. 개성난봉가/한강수타령 / 김병국 / 3‘20
22. 경복궁타령 / 장재천 / 1‘00
23. 군밤타령 / 김진명 / 1‘22
24. 놀량 / 김병국 / 3‘32
25. 산타령(1) / 김병국 / 3‘11
26. 산타령(2) / 한경심 / 6‘55
27. 축원경 / 장재천 / 4‘48

가창자

  • 김진명(金振明)

김진명은 북한이 자랑하는 민족예술가로 1913년 황해남도 벽성군에서 출생하여, 1997년 5월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고향에 있는 서당에서 공부한 후 1928년부터 당시 명창으로 알려진 신봉학에게서 서도민요를 배웠다. 1933년 서울에서 열린 서선명창대회에서 독창 1등을 하여 관서명창으로 혜성과 같이 나타나, <구도라지타령>, <은률 금산포 백도라지>, <신도라지> 등 수십 편의 민요들을 빅타레코드에 취입하였다. 해방 이후 한일가무단 연구부를 조직하여 민요부장으로 일했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조선악연구와 국립예술극장 민요부장, 음악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민요 가수들을 키우는 한편 민요풍의 곡들을 창작하였다. 그의 <장화홍련전>, <싸우는 계월향>, <얼룩소야 어서 가자>, <산천가>, <양키토벌가> 등은 대중의 인기를 끈 작품이다. 1960년 초에는 서도민요를 바탕으로 한 현대 창극인 <강건너 마을에 새노래 들려온다>를 창작하였고, <모란봉>, <청진포뱃노래>, <바다의 노래> 등 특색있는 신민요들을 창작하였다. 뛰어난 서도명창이자 서도소리의 보급과 창작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 공훈배우, 1962년에 인민배우가 되었다. 1990년에는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의 단원으로 남한에 와 공연한 바 있다. 그가 젊은 시절에 남긴 소리는 현재 서울음반의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16 서도소리선집(2)}(SRCD-1149) 등에서 들어볼 수 있다.

  • 한경심(韓瓊心)

한경심은 1933년대부터 방송과 음반을 통해 많은 활약을 한 서도소리 명창이다. 1933년 8월 <다리굿>, <술마리>를 방송한 것을 시작으로, 1934년에는 <서도팔경>, <십자타령>, <역금수심가>, <평조수심가>, 1939년에는 <놀량>, <사거리>, <산염불>, <영변가>, <중거리>, <진난봉가> 등의 서도소리를 방송하기도 했다. 1933년 평양 기성권번 기생들의 특별 방송 출연에 함께 한 것으로 보아 평양 기성권번의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경심은 주로 콜럼비아(Columbia) 음반에 많은 노래를 녹음했는데, 곡목은 <경복궁타령>, <기밀경>, <다리굿>, <산타령>, <밀양아리랑>, <목욕관음>, <배꽃타령>, <병신난봉가>, <수심가>, <자진수심가>, <장타령>, <축원경>, <한강수타령> 등이다. 한경심은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장구 반주를 맡기도 했다.

  • 장재천(張在天)

장재천은 1922년 황해남도 봉산군 출생으로 열두살부터 열다섯까지 3년 동안 기생양성소 심부름꾼으로 잡일을 하면서 어린 기생들이 배우는 노래를 익혔다고 한다. 노래 가르치는 접장 노릇을 1년간 하기도 했으나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1948년 7월 협율단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그는 창극 <배뱅이굿>의 주인공 박수무당 역으로 서울과 황해도 일대를 순회 공연하여 큰 인기를 모았다.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는 <산염불>, <방아타령>, <양산도>, <개성난봉가>, <사설난봉가>, <놀량사거리>, <배따라기>, <구영변가>, <황주 긴난봉가> 등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조선인민군 협주단에 들어가 활동했고, 그 뒤에는 여러 무대에 출연하는 한편으로 많은 민요 가수들을 양성하였고, 1963년 민족가극 <여성혁명가> 작곡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가야금병창 <금강의 노래>와 제창곡인 <중대의 자랑>, <밀림속의 아리랑>, <우리나라 좋을시구>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968년 2월 북한의 공훈배우가 되었고 후에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민족성악강좌 고문으로 재직하였다.

  • 김관보(金官寶)

김관보는 1921년 평안남도 성천군의 명창마을로 이름이 높았던 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소녀명창으로 10여 세에 이미 명성을 날렸고, 17세인 1938년에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명창대회에서 <꼴망태목동>과 <창부타령>을 불러 1등을 하였다. 해방 초기인 1945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예술단 민요가수 모집을 위한 경연에서 <강원도아리랑>, <평북영변가>, <창부타령>을 불러 1등을 하였다. 1945년 9월 갓 조직된 한일가무단 고전예술극장(뒤에 민족예술극장으로 개칭)의 민요 독창가수로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하였으며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룡강기나리>, <강원도아리랑>, <강원도기나리> 등을 불러 금메달을 받았다. 창극인 <계월향전>, <배뱅이굿>, <강건너 마을에서 새노래 들려온다> 등에서 활약하였고 <꼴망태목동>, <어머님전상서> 등의 신민요도 많이 불렀다. <바다의 노래>, <모란봉> 등은 그의 스승이자 인민배우인 명창 김진명이 그의 창법에 맞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한다. 아래 위로 격하게 떠는 기존 서도소리 창법에 비해 매우 부드러운 창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1957년에 공훈배우가 된 이후 많은 제자를 길러내었으며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민족성악 고문으로 재직하였다.

  • 김병국, 위상심

김병국과 위상심은 남한 음악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소리꾼이다. 일제 때 경성방송국에서 노래를 한 기록도 없고, 유성기음반을 녹음한 경력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해방 후에 비로소 북한에서 소리꾼의 반열에 들어간 사람들로 보인다.

(가창자 소개: 조유미 이화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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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요전집_세부곡목4.txt · Last modified: 2022/03/03 12:32 by 127.0.0.1